일본에서 2022년 12월 3일 개봉해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4일 개봉한 "슬램덩크 더 퍼스트"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개봉 44일만에 관객 567만명 / 흥행수입 82억을 돌파하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매의 문단속>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후로 7주연속 주말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슬램덩크는 '농구'를 소재로한 가장 대표적인 만화이며 한국에서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약 26년 전인 1996년 연재종료된 이후 2022년 공개된 영화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원작 자체가 꾸준한 화제성과 팬들을 보유한 인기작품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기대이상으로 높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원작 팬은 물론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영화에 몰입하며 작품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지기 전에는 과거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버전과는 다른 변경된 성우진 3D CG영상 등에 대해서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개봉 후 관객들의 호평으로 가득차 개봉 첫날 이틀 만에 84만명 관객 동원, 13억엔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보였습니다. 이후에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 SNS 등에 호평을 남기며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작자가 직접 감독을 맡은 영상 퀄리티
이번 영화는 원작자인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직접 감독을 맡았습니다. 만화가로서는 이미 일본 내에서 정점을 찍은 그가 슬램덩크 원작의 그림 및 일러스트를 옅은 톤으로 종이위에 그려진 감각으로 섬세한 모션이나 터치를 살려냈습니다. 손으로 그린 스타일로 완성된 셀룩 CG애니메이션이나 CG와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처음에는 성우의 목소리가 예전과 달라 당혹스러웠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준높은 애니메이션에 성우의 목소리가 신경쓰지 않게되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코트 위의 농구장면은 특히 압권으로 모션캡쳐를 구사한 3D CG에 섬세한 조율과 리터치로 실제 경기를 보는듯한 현장감을 재현했습니다. 애니메이션적 과장을 피한 리얼리티가 있는 움직임을 목표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노우에 감독이 직접 화면 구석구석의 디테일을 수정하며 3D CG 특유의 무기질 질감을 억제한 표현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려 26년 전에 만들어진 원작의 애니메이션 퀄리티에 만족하지 못했던 팬들도 이번에는 현대의 높은 에니메이션 기술로 비로소 구현된 영상화에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화 기획 출범후 약 13년, 이노우에 감독이 직접 기획을 승낙한 후 약 8년, 실작업이 시작된 후 약 4년이라는 엄청난 준비 시간에 다수 스텝들의 노력과 제작과정이 녹아들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줄거리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원작에서 이미 그려진 마지막 경기인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를 그렸습니다. 다만, 강백호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아닌 송태섭 (미야기 료타)의 시점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원작에서는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던 송태섭의 뒷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밝혀집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지만 시점을 달리 함으로써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며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소재나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원작 팬들도 신선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주요 시점으로 등장하는 송태섭 뿐만 아니라 다른 북산고 멤버들의 과거도 조금씩 다루고 있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캐릭터들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 원작 팬들에게는 슬램덩크의 명장면집을 보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산왕공고의 캐릭터는 원작만큼은 자세히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배경설명이 있기 때문에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북산고에 감정을 이입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개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슬램덩크 원작의 후속 이야기를 그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던 슬램덩크의 이야기를 그려 원작의 팬과 원작을 읽지않은 세대를 아울러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더 세컨드 슬램덩크> 나올 수 있을까
2003년 최초의 기획제안에서 시작해 2009년부터 구체적인 영화화 기획을 여러번 제안받았으나 거절해왔던 이노우에 감독은 2014년 드디어 영화화 제안을 승낙하게 됩니다. 5년에 걸쳐 비디오 메세지나 파일럿 버전을 여러번 제작해 보내온 프로듀서의 열의와 이노우에 감독 자신이 꿈꾸던 이상에 가까운 영상화 실현에 희망을 느낀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역시 모든 것은 독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1996년 연재 당시 인기 절정속에서 다소 갑작스러운 종영을 맞이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으로써는 최고의 결말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이런 결말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지만 아쉬워하는 팬분들이 많았습니다. 원작자인 이노우에는 직접 원래부터 구상했던 결말이었음을 수차례 밝히기도 했고 종영 후에도 여러 이벤트를 벌였지만 아쉬움의 목소리는 사그러들지 않았는데요. 언젠가는 이러한 팬분들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번 영화제작의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이노우에 감독은 이번 영화의 타이틀 더 퍼스트에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밝혔지만 더 세컨드는 아직 계획에 없는 것으로 알렸습니다. 한편, 이노우에는 본인의 공식 사이트에 슬램덩크의 캐릭터가 아직도 자신 안에 살고 있다고 밝히며 속편에 대한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한국에서의 흥행
한국에서 1월 4일 개봉한 이래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종영 후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만큼 원작을 그리워하는 팬뿐만 아니라 원작이 가진 화제성 때문인지 원작을 접하지 못한 MZ세대들도 함께 열광하고 있는데요. 슬램덩크에 열광하던 30-40대의 부모와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더빙판과 자막판이 동시에 개봉했는데요. 외국작품을 더빙판으로 보는 것이 이제는 조금 어색해진 시대가 되었지만 역시 강백호, 채치수, 서태웅, 송태섭, 정대만 등등 한국화 되어버린 캐릭터들을 사랑했던 원작의 팬들로서는 더빙판을 놓칠 수가 없겠지요. 당시 일본과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9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한일의 10대들이 슬램덩크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같은 시간을 지나 함께 청춘의 그리운 추억에 젖게 만드는 시대와 국경을 잇는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는 주요 캐릭터들의 스케치가 그려지며 시작하는데 정말 이 작품을 사랑했던 원작의 팬들이라면 5분 안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고 하지요.
슬램덩크가 높은 화제성을 기록함에 따라 10대 20대는 원작을 읽어보기 위해서, 그리고 30-40대들은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슬램덩크 만화를 찾거나 원작 애니메이션을 찾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원작 애니메이션이 화제의 작품으로 올라있기도 합니다. 역시 저희 집에도 몇년 전에 출간된 슬램덩크 소장판 전집이 있기도 한데요. 정말 좋은 작품은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큰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관을 찾아 잊었던 옛 추억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상.